Since…

오늘은 좀 특별한 날이다.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이성에게 고백하고, 그녀에게 그 사랑을 허락받았던 의미있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꽤나 오래된 이야기지만, 유치하게 그날 난 휴지로 장미 한송이를 접어 줬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어리고 순수한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사람을 만날 생각을 했었는지…
어찌 보면 그때 그럴수 있었던 내가 그립기도 하다.

한 사람을 오래 만나다 보면 지리하거나 감정이 무뎌지지 않냐는 소리를 곧잘 듣는다.
물론 그럴것이다. 사람이라면 만남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그 사람에 익숙해지고 조금씩 감정이
무뎌지게 되기도 할것이다. 가끔은 처음 만날때와 같던 설레임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하지만 오랜 사랑에도 나름대로의 멋스러움이 있다. 친구들의 오랜 우정은 걸죽하게
우려낸 사골국물 같은 분위기라면, 연인들의 오랜 사랑은 팍 삭힌 홍어회 같은 깊이있는
맛이라고 해야 할까?
좀 비유가 그런가? 암튼 표현하기 쉽진 않지만 그것대로의 묘한 매력이 분명히 느껴진다.
그러니까 서로 잘났다고 매번 싸우면서도 잘 만나고 댕기는거 아닐까?

작년부턴 이것저것 대소사를 생각나는대로 메모해 두었다가 챙겨주려고 노력한다.
예전같지 않다는 잔소리를 자주 듣게 되면서, 나름대로 성의를 보여주기 위해 마련한
방편이다. 그런날이면 매번 화려한 만찬은 없었지만, 오늘은 이런날이라며 서로 축하해주고
내년의 날을 기약하자며 둘이 등 토닥이며 조촐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돈 없는 가난한 백수 만난 덕에 만날때마다 원조김밥에 라볶이나 맥도날드 행사용 햄버거에
리필 콜라만 먹이고 다녔던게 매번 가엽게 느껴졌던 터라 뜻깊은 오늘 만큼은 칼질 한번
아니 시켜줄 수 없었다.
이리저리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어찌나 기특하기도 하고 측은한 맘이 들던지…
예전 같았으면 무슨 날되기 몇일전부터 자기가 찜해논 물건 사달라며 노래를 부르고 다녔을 터인데,
이렇게 무던히 밥 얻어 먹는걸로 만족해 하는 걸 보면 그런맘이 더욱 들게 된다.
어서 그녀가 원하는 ‘빌딩한채’를 손에 쥐어줘야 할텐데..–;

바래다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 쌓인 눈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보니 하늘이 우리를 제일 먼저 축하해준것 같군’

** 오늘 처음으로 아이북으로 Sunny에게 영화를 보여줬다. 어찌나 신기해하던지..
(참고로 그녀는 ‘컴퓨터 = 인터넷하는 기계’라는 등식만이 성립하는 부류이다.)
영화 끝까지 보겠노라고 집까지 뺏어 들고 갔는데, 흥분해하는 기세로 보아 내일 일하는 곳까지
들고 가 자랑할 모양이던데… 주의를 주긴 주었지만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