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야 사는구나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는 인간의 선천적 본능과, 아무일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후천적 성향의 귀차니즘이 정면으로 대결한 하루였다. 결과는 14시간만에 무의식적으로 신라면이 목욕할 물을 냄비에 얻으면서 귀차니즘의 패배로 끝을 맺었다.
냄비속의 물을 가만히 쳐다보면서, 인생의 반이상을 먹고 싸고 자는데 투자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허무함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어릴적 밥 안먹고도 살 수 있는 알약을 만들겠노라고 힘찬 포부를 밝혔다가 엄니한테 ‘천하의 게으른 놈’이라는 예상치 못한 꾸지람을 들었을때부터 나의 肩 의구심은 시작되어진것 같다. 조물주는 왜,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런 소모적이며 비효율적인 행위들을 만들었으며, 이를 인간의 본능으로 치장하여 그들에게 절대로 피해 갈수 없는 운명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그러나…이런 물음에 대한 생각들을 하나둘씩 접근해 갈때쯤에, 때가 왔음을 가르키는 신라면의 스프냄새는 그런 의문들을 한낱 사치스러운 공상에 불과하게 만들어 버렸다.
‘뭐야 다 필요없어, 배고파 죽겠는데….’
그 순간에는 오직 나와 신라면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결국, 진정한 귀차니즘의 완성은 적절한 면식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 체험 삶의 현장의 교훈이 되는건가.


화장실 들어갈때와 나올때가 틀리다고 했던가,
신은 여성에게 출산의 고통을 안겨 주는 대신 부성보다 강한 모성을 선물하였고, 사회는 남성에게 생계유지의 책임을 부여하면서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가져다 주었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먹고 난후의 포만감이나 배설후의 희열, 숙면뒤에 느끼는 충만감 등은 위에서 얘기한 소모적 비효율성의 한 댓가로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적당한 포만감을 느끼는 지금 문득 든 생각을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