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자르고

머리를 잘랐다. 아니 머리카락을 잘랐다.
짧게..
반강제로 내려놓았던 앞머리를 치워버리자
넓어진 이마가 훤히 드러나고, 빈약한 앞머리가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사실 그간,
방바닥을 훔칠때마다 한움큼씩 쥐어나오고
일주일이 멀다하고 쌓여가는 세면대 아래 배수구의 머리카락을 보면서
몹시 씁쓸해져 있었다.

괜한 우울함을 가을타령에 돌리고,
매사에 소심해지는 일에 자신감도 적어지고
나 자신에 부정적이었다.

허나 가는 세월 붙잡지 못하고 오는 세월 막을수 없다고
탈모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난 내가,
또 그 유전자가 발현(expression)되도록 운명 지어진 그 내가,
한 가닥에 얼마짜리 머리를 심거나, 수제 뚜껑을 맞춰 쓰지 않는 한
날 떠나가는 그들을 막을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서야 비로서 들게 되었다.

지금, 나에게 잘려 나갔던 것은 더이상 앞머리를 가릴수 없는 머리카락들이지만
다시 자라난 것은 예전 못지 않은 자신감과 세상에 순응할 수 있는 자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