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혁명』의 저자이자 창조력 전문가인 로저 본 외흐 박사는 사람들의 창조성을 저해하는 요소가 바로 전문화라고 지적한다. 그는 전문화는 능률을 가져오지만 ‘그것은 내 전문분야가 아니다’라는 태도가 창조적 사고를 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했다. 그런 태도를 가지면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편협하게 생각하게 되어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보려 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도 상당한 문제가 되고 있다. 한 우물을 파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성공한다는 사고는 초기 지식 사회에서는 성장의 동력이 되었으나, 통합적 사고를 요구하는 요즘에는 오히려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문외한(門外漢)이 어떤 사람인가? 사전적으로 보면 어떤 일에 직접 관계가 없는 테두리 밖의 사람, 또는 그 일에 전문가가 아닌 사람을 말한다. 만약 한 분야에만 전문적이고 다른 분야에만 전혀 실력도 관심도 없다면 그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벗어난 모든 분야에서 문외한이 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전문분야’라는 우물 안에 살고 있는 개구리가 되는 것이다.
창의적인 사고는 한 분야의 지식이 다른 분야와 융합하여 유추되고 변형되어야만 나올 수 있다. 분야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사고에서 최고의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다. 이런 창의적인 사고가 한두 사람의 천재가 아닌 우리 사회 전반에서 나타날 때 우리는 소프트웨어 강국이 될 수 있다. 한두 개의 대기업이 아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창의성을 폭발시킬 수 있는 토양이 필요한 것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교수는 『세계사를 움직인 다섯 가지 힘』이라는 책의 해제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지식을 분류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백과사전형 지식’과 ‘전문가형 지식’이다. 단어 그 자체로, 얕지만 넓게 아는 것과 깊지만 좁게 아는 두 가지 유형의 지식 체계를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모든 부문에 대해 다 잘 알면 좋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고, 결국 개개인에게도 지식을 습득하는 패턴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된다. 한국에서도 백과사전형 지식은 이규태를 비롯해서 이어령에 이르기까지, 분명히 존재해온 하나의 패턴이었다. 그러나 경제 근본주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IMF 경제위기 이후 이러한 백과사전형 지식체계를 갖춘 사람은 더 이상 등장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10년 가까이 전문가형 지식을 갖춘 사람을 사회적으로 우대하고, 또 그렇게 사회의 지식 체계가 움직여 나갔다. 학계만 보더라도 백과사전형 지식시대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던 ‘학자’ 혹은 ‘지식인’이라는 단어보다는 ‘전문가’라는 단어를 더욱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분명히 그런 시기가 있었고, 지금도 우리는 한국의 10대들과 대학생들에게 ‘전문성’을 유별나게 강조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앞으로 다시 한 번 백과사전형 지식이 필요한 순간이 분명히 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흩어져 있는 지식들을 엮어내고, 그것들을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아니, 이미 우리 앞에 와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학문적인 기저에서 ‘백과사전적 지식인’은 기업이나 사회분야에서는 ‘통합형 인재’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기업을 비롯한 학계와 사회의 전 부문에서는 전문성과 함께 폭넓은 지식기반을 가진 창의적인 통합형 인재를 간절히 찾고 있지 않은가. 결국 우리의 미래를 이끌고 나갈 인재들이 바로 통합형 인재들인 것이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사람들이 첨단IT기업을 이끌고 있다고 해서 그들을 단순히 소프트웨어 최고의 기술자라거나 뛰어난 경영자라고만 할 수 있는가? 이들을 엄밀하게 정의한다면 기술자나 경영자가 아니라 통합하는 사람이다. 정보시대의 미래를 예측한 예언자들이고, 첨단 기술에 인간적인 효용을 결합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든 창조자들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석학, 이어령 교수는 자신의 책 『디지로그』에서 최첨단 IT 기술을 ‘디지털’로, 거기에 반해 인간적인 감성, 전통 문화 등을 ‘아날로그’로 정의했다. 그리고 비트로 이루어진 디지털과 신체자원으로 이루어진 아날로그의 조합을 ‘디지로그’라는 신개념으로 정리했다. 지난 2006년 에 연재한 신년 에세이를 보완하여 출간한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자신의 이론을 펼쳤다.
그는 정보화 사회에서 결코 디지털화할 수 없는 마지막 아날로그적 영토로 미각과 음식물을 지목했다. 그리고 첨단 기술에도 인간적인 면이 가해져야 최고의 제품이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한국이 나아갈 길은 디지로그에 있다고 주장한다. ‘먹는다’는 표현에는 우리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솥밥을 먹는다’ ‘애를 먹는다’ ‘나이를 먹는다’ ‘말이 안 먹힌다’ ‘골을 먹는다’ 등등 세상 어떤 언어가 이렇게 다양한 먹을거리를 가지고 있는가? 디지로그는 이러한 우리 문화의 고유한 속성을 디지털과 연결한 놀라운 통찰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디지털 세상이 더욱 발전해나가려면 속도의 디지털과 인간적인 감성인 아날로그의 결합 없이는 불가능하다. 순수한 기계적 이미지의 디지털만으로는 더 큰 도약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 역시 마찬가지다. 전에는 한 가지 일에 남다른 전문성을 지닌 인재를 원했다면 이제는 전문성과 함께 폭넓은 지식을 가진 인재를 필요로 한다. 통합의 시대에 한 가지 전문성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현실을 우리 모두가 자각했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다음과 같이 한탄했다. “옛날에는 소위 학교라는 것이 예와 악을 배우고 익히는 곳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예와 악이 무너져 내려 오직 독서만 가르친다.” 인격의 성장을 위한 예와 감성을 키우는 데 필요한 악을 가르치는 전통이 사라지고 오직 ‘학문을 위한 학문’만 남았다는 것이다. 오직 전문기술만 우대하는 요즘의 우리 현실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교육체계에서는 전문성은 물론 인격과 예술적인 감성, 그리고 통찰력을 지닌 통합형 인재가 키워지기 어려운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일을 진척시키는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을 가진 사람이라면 끈질기게 기회를 기다리는 끈기는 없다. 첨단 기술에 탁월한 사람이라면 인간적인 통찰력과 깊이는 없다. 세상을 보는 눈이 빠르고 변화에 잘 적응한다면 충성심이라는 덕목은 모자라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 두 가지 모두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디지털의 빠른 속도를 따라가면서 거기에 인간적인 아날로그를 접목한 통합형 인재,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나의 전문기술을 열심히 가다듬고 인문학적 소양과 감성능력으로 통찰력과 통합능력을 키우는 것, 이것이 바로 그 해답인 것이다.
출처 : 인문으로 통찰하고 감성으로 통합하라